한범덕 고문 (전 청주시장)
추운 날씨일수록 차 한 잔이 주는 따뜻함은 비할 것이 없습니다 .
바쁜 현직에 있을 때는 오는 손님도 많고, 시간도 많지 않아 비서실에서 준비해 주는 차를 마시게 되다 보니 음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책을 보다 맞이하는 손님에겐 원두커피를 갈아 마시거나 녹차 등을 따끈한 물에 우려내 마시게 됩니다. 아무래도 차 준비해 줄 사람도 없거니와 저 자신이 시간여유가 있으니까 이런 사치 아닌 사치를 즐기게 됩니다.
이번 2024년 2월호 과학동아에 ‘ 티타임 속의 과학이야기’라고 해서 몇 가지 재밌는 기사가 실려 말씀드려 봅니다.
미국 포틀랜드대 컴퓨터과 죠슈아 하퍼 교수와 오리건대 화학과 크리스토퍼 헨든 교수 연구팀이 화산에서 발생하는 번개 등 전기현상을 연구하던 중 커피를 그라인더에서 갈다가 발생하는 정전기현상을 보고 화산활동이 벌어질 때 마그마가 작은 입자로 쪼개져 서로 마찰하면서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과 같다는 생각아래 연구를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커피도 분쇄된 커피입자가 같이 부딪히며 마찰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랍니다 . 커피 갈 때 이런 정전기 현상을 방지하려면 한 숟가락 물을 부으면, 커피콩의 수분은 많아지고 마찰전기는 작아진다고 합니다.
아일랜드의 리머릭대 연구센터는 커피가루 사이를 이용하는 유체의 흐름에 따라 커피가 얼마나 균일하게 추출되는지 분석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커피입자의 크기, 추출방식에 따라 농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 이것은 물(액체)을 흘려 커피가루 (원료)로 카페인(화학물질 )을 추출하는 과정이 완벽한 화학공장의 공정과 일치한다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커피링 효과(coffee ring effect)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커피 흘린 자국을 보면 가장자리가 중간보다 색이 더 진한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마랑고니 흐름 ’이라는 일본말에서 나온 용어로 액체의 표면을 최소화하려는 표면장력에 의하여 생겨난다고 합니다. 평평한 판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표면장력으로 반구( 半球) 형태를 이루는데, 이런 형태를 이루기 위하여 물분자는 가장자리로 흐르게 됩니다 . 그래서 물은 가장자리부터 증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커피도 이러한 마랑고니 효과에 의하여 물분자와 함께 가장자리로 이동합니다. 나노입자를 얇은 막 형태로 씌우는 반도체 공정에서 이러한 커피링 효과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찻잎이 둥둥 떠있는 찻잔에 숟가락을 넣고 휘휘 저으면 찻잎은 어디로 이동할까요? 언뜻 생각하면 찻잎이 찻잔 벽으로 달라붙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고 가운데로 몰린다고 합니다. ‘찻잎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지요 .
이 현상도 오랫동안 학자들이 고심하면서 문제를 풀려고 했습니다만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26 년 아인슈타인이 논문으로 해답을 밝혔습니다. 처음에 찻잔에 숟가락을 넣고 저으면 원심력으로 찻잔 가장자리로 찻잎이 가는데, 숟가락에 따라 움직이는 유체가 찻잔 바닥으로 갈수록 흐름속도가 느려져 찻잔과 유체 사이 마찰력이 생겨 유체가 위로 향하게 되면서 찻잎이 찻잔 가운데로 몰린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를 아인슈타인 같은 대학자가 어떻게 해서 논문으로 밝히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혈액 속에 있는 적혈구가 바로 찻잎처럼 둥둥 떠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혈구만을 추출하기 위한 분리방법에 이러한 방식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차를 따를 때 , 조용히 품위 있게 따르려면 어떻게 따라야 할까요?
서울대 기계과 김호영 교수팀이 물 따르는 소리를 분석한 결과, 물줄기는 두껍게 하고, 찻주전자는 찻잔과 가깝게 하는 것이 소리를 작게 한다고 합니다. 김 교수팀은 지름 10cm의 원통에 굵기가 다른 물줄기를 만들어 소리를 비교했더니 가는 물줄기 소리가 요란했다고 합니다. 원통내부의 거품과 유체흐름도 촬영을 한 결과 물줄기가 갈라질수록 소리는 커지는데 , 이는 내부에서 발생된 공기방울의 크기와 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공기방울이 많아질수록 소리가 커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조용히 따른다고 조심스럽게 부으면 오히려 소리가 커진다는 것이지요.
오늘도 최고의 날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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